그릭타운 (토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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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그릭타운 (토론토)은 캐나다 토론토의 댄포스 애비뉴에 위치한 그리스인 밀집 지역이다. 1843년 그리스인들의 이민이 시작된 이후, 20세기 초반 가난, 전쟁,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이민자 수가 증가하면서 몬트리올과 토론토에 정착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북미 최대의 그릭타운으로 성장했으며, 1990년대 이후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었다. 매년 8월에는 그리스 음식과 문화를 기념하는 '테이스트 오브 더 댄포스' 축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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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릭타운 (토론토)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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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공식 명칭 | 그릭타운 |
다른 명칭 | 댄포스 토 단포스 (Το Ντανφόρθ) |
유형 | 동네 |
도시 | [[파일:Toronto Flag.svg|25px]] 토론토 |
영어 명칭 | Greektown The Danforth |
그리스어 명칭 | Γκρικτάουν Το Ντανφόρθ |
지도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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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정보 | |
2. 역사
1843년 그리스인들은 크레타섬, 시로스섬, 스코펠로스섬 등 그리스 섬 지역과 펠로폰네소스반도에서 몬트리올로 처음 이민 왔다.[4] 20세기 초, 그리스 내 가난, 전쟁, 정치 불안정으로 인해 이민이 급격히 증가했고, 이들은 주로 몬트리올과 토론토에 정착했다. 1909년 토론토에는 최초의 그리스 정교 교당이 세워졌고, 세속적인 그리스인회도 형성되었다.[4] 발칸 전쟁(1912~1913년)으로 이민이 잠시 주춤했으나,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그리스계 캐나다인도 있었다. 1920년대에서 1940년대에는 "페리클레스의 아들들"과 같은 청년 단체가 결성되어 그리스인 정체성을 고취했다.[4]
초기 그리스인들은 캐나다 사회에서 차별을 받았다. 1918년 토론토 반(反) 그리스 폭동은 대표적인 사건이다.[4] 1918년 당시 댄포스는 농촌 지역이었고, 프린스 에드워드 고가교 건설 전까지는 고립된 지역이었다.[5]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캐나다의 이민 정책 완화로 그리스인 이민이 증가했다. 1960년대 군사 정권을 피해 온 이민자들로 댄포스는 1970~80년대 북미 최대 그릭타운으로 성장했다.[5] 1981년 댄포스빌리지 사업개선지역(BIA)이 설립되었고, 1993년 '댄포스의 그릭타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5]
1970년대 초부터 그리스인들은 토론토 교외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댄포스는 관광 명소화를 꾀했으나 대형 체인점 입점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속화되었다.[5] 2018년에는 그릭타운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6]
2. 1. 초기 정착 (19세기 말 ~ 1940년대)
그리스인이 처음 캐나다로 이민 온 것은 1843년으로, 크레타섬, 시로스섬, 스코펠로스섬 등 그리스 섬 지역과 펠로폰네소스반도에서 몬트리올로 건너왔다.[4] 1900년까지만 해도 그리스인의 이민은 산발적이었으나, 20세기 초반 그리스 내 가난, 전쟁, 정치 불안정으로 인해 급격히 증가하였다.[4] 초기 정착민들은 선원이었기 때문에 항구 도시를 선호했고, 그리스에서의 어려운 농촌 생활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캐나다로 건너온 그리스인들은 대부분 몬트리올과 토론토에 정착하였다.[4]
이민자 수가 늘면서 그리스의 언어와 문화를 보전하기 위한 문화 시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09년에는 토론토에 처음으로 그리스 정교 교당이 세워졌고, 종교와는 별도로 세속적인 그리스인회도 토론토를 포함한 캐나다 주요 도시에 형성되었다.[4] 1912년과 1913년에는 발칸 전쟁으로 많은 젊은 그리스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참전하면서 이민이 주춤하였다.[4]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캐나다군은 그리스인들이 이질적이라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모병하지 않았지만, 지원자들은 입대할 수 있었다.[4] 제2차 세계 대전 때도 많은 그리스계 캐나다인들이 군에 자원 입대하였다.[4]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그리스계 캐나다인들이 점차 자리를 잡으면서 토론토에 그리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알리기 위해 "페리클레스의 아들들" (Sons of Pericles)과 같은 청년 및 청소년 단체가 결성되었다.[4]
그리스인들은 처음 캐나다 사회에 왔을때 환영받지 못했다. 옷차림, 이름, 언어, 억양이 달랐던 이유로 뭇매를 맞기도 하였다.[4] 1918년 토론토 반(反) 그리스 폭동이 대표적인 사건으로, 1918년 8월 2일, 캐나다 군인이 토론토에 있는 그리스 카페에서 공격당했고, 그릭타운의 다른 그리스 카페와 식당도 재산 피해를 입었다.[4] 그리스계 미국인 기자인 페트로스 타타니스는 이 사건에 항의하여 1918년 8월 5일 온타리오주 총독에게 그리스계 캐나다인들이 박해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전보로 요청했다.[4]
1918년까지만 해도 댄포스의 그릭타운은 대부분 농촌 지역이거나 개발이 거의 되지 않은 곳이었다. 댄포스 애비뉴는 돈 계곡이 토론토의 동서를 갈랐기 때문에 1918년에 프린스 에드워드 고가교가 놓일 때까지 고립된 지역이었다.[5]
2. 2. 형성 및 발전 (1950년대 ~ 1980년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캐나다는 국가 재건을 위해 이민 정책을 완화했다. 1950년대에는 농부, 가사 도우미, 간호사 등 캐나다가 필요로 하는 노동자와 기존 이민자들의 가족 초청을 통해 그리스인 이민이 증가했다.[5] 많은 그리스계 캐나다인들은 고향 지인들을 캐나다로 초청했다.[5] 1960년대부터는 캐나다 이민 정책이 출신 지역보다 교육 수준과 직업 능력 위주로 바뀌면서, 일부 그리스인들은 관광객으로 입국 후 영주권을 얻는 방식으로 정착하기도 했다.[5]
1950년대에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1960년대에는 군사 정권을 피해 그리스 이민자들이 댄포스로 대거 유입되면서 그릭타운이 형성되기 시작했다.[5]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댄포스는 북미 최대의 그릭타운으로 성장했다.[5] 1981년 8월, 댄포스 상인들은 댄포스빌리지 사업개선지역 (BIA)을 설립했고, 1993년에는 '댄포스의 그릭타운'으로 명칭을 변경했다.[5]
1970년대 초, 그리스인들은 댄포스를 벗어나 이토비코, 노스요크, 미시사가, 스카버러 등 토론토 교외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5] 댄포스는 '그릭타운'이라는 명칭을 통해 관광 명소로 변모를 꾀했지만, 팀 호턴스, 스타벅스 등 대형 체인점들이 들어서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속화되었다.[5]
2. 3. 변화와 젠트리피케이션 (1990년대 ~ 현재)
1970년대 초부터 그리스인들은 댄포스에서 이토비코, 노스요크, 미시소가, 스카버러 등 토론토 교외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추세는 1970년대 중반과 1980년대에도 계속되었다.[5] 1981년 8월, 댄포스의 상인들은 댄포스빌리지 사업개선지역 (BIA)을 설립하였고, 1993년에는 BIA 측에서 사업개선지역 이름을 "댄포스의 그릭타운" (GreekTown on the Danforth)으로 변경하였다.[5] 이는 인근 주민과 관광객을 유치하고, 기존의 평범한 쇼핑몰 대신 "진정한 소수 민족 대안"을 제시하여 동네를 그리스풍 관광 명소로 만들기 위함이었다.[5]하지만 이러한 관광지 조성은 외부 기업의 유입을 불러왔고, 팀 호턴스, 스위스 샬레, 스타벅스, 세컨드 컵과 같은 체인점들이 입점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속화되었다.[5] 부동산 가격 또한 댄포스 남쪽의 리버데일을 중심으로 상승했고, 댄포스에 있던 그리스 카페와 식당들은 여피족을 겨냥하여 새롭게 단장되었다.[5]


2018년 7월 22일에는 그릭타운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여 용의자를 포함해 3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을 입었다.[6] 범인은 29세의 파키스탄계 캐나다인 남성인 파이살 후세인으로, 정신증과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6]
3. 문화
댄포스 그릭타운은 독특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 이 지역의 거리 표지판은 영어와 현대 그리스어로 함께 표기되어 있으며, 로마자 표기는 ISO 843을 따른다. 거리 표지판의 예시는 다음과 같다.
- 칼라우 애비뉴 – Οδος Καρλαω (오도스 칼라오)
- 댄포스 애비뉴 – Οδος Ντανφορθ (오도스 댄포스)
- 고프 애비뉴 – Οδος Γκωφ (오도스 고프)
- 페이프 애비뉴 – Οδος Πεηπ (오도스 페이프)
1909년 토론토에 처음으로 그리스 정교 교당이 세워졌고, 종교와는 별개로 세속적인 그리스인회도 토론토를 포함한 캐나다 주요 도시에 형성되었다.[5]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는 그리스계 캐나다인들이 점차 자리를 잡으면서 토론토에 그리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고취시키기 위해 "페리클레스의 아들들"과 같은 청년 및 청소년 단체가 결성되기도 하였다.[5]
3. 1. 테이스트 오브 더 댄포스 (Taste of the Danforth)

매년 8월 중순에 열리는 《테이스트 오브 더 댄포스》 (Taste of the Danforth)는 댄포스에서 사흘에 걸쳐 열리는 대형 음식 축제이다. 입장료 없이 브로드뷰 애비뉴에서 존스 애비뉴까지 댄포스 애비뉴를 따라 늘어선 식당들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그리스 요리가 주를 이루지만, 태국, 중국, 브라질, 인도, 일본 요리 등 다양한 음식도 맛볼 수 있다. 게임, 어린이 놀이기구, 인공암벽, 스트리트 하키, 농구 등 즐길 거리도 다양하다. 야외 상설 무대에서는 그리스 음악과 춤을 중심으로 전 세계의 음악을 선보인다.[7] 1993년 처음 열렸을 때 5천 명이 참여했고, 2019년에는 160만 명이 참석하여 토론토의 주요 축제로 자리 잡았다.[7]
3. 2. 거리 표지판

그릭타운의 거리 표지판은 영어와 현대 그리스어로 표기된다. 로마자 표기는 ISO 843을 따른다.
- 칼라우 애비뉴 – Οδος Καρλαω (오도스 칼라오)
- 댄포스 애비뉴 – Οδος Ντανφορθ (오도스 댄포스)
- 고프 애비뉴 – Οδος Γκωφ (오도스 고프)
- 페이프 애비뉴 – Οδος Πεηπ (오도스 페이프)
3. 3. 기타 문화 시설 및 단체
1909년 토론토에 처음으로 그리스 정교 교당이 세워졌고, 종교와는 별개로 세속적인 그리스인회도 토론토를 포함한 캐나다 주요 도시에 형성되었다.[5]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는 그리스계 캐나다인들이 점차 자리를 잡으면서 토론토에 그리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고취시키기 위해 "페리클레스의 아들들"과 같은 청년 및 청소년 단체가 결성되기도 하였다.[5]참조
[1]
웹사이트
Historicist: Greektown on the Danforth
https://torontoist.c[...]
Buzz Connected Media Inc.
2022-09-21
[2]
웹사이트
Toronto-Danforth: Demographic Profiles
https://www.toronto.[...]
2022-09-21
[3]
뉴스
Three dead, including shooter, 12 injured in Toronto mass shooting
https://www.theglobe[...]
[4]
웹사이트
Our Story
http://www.tasteofth[...]
Taste of the Danforth
2014-01-29
[5]
웹인용
History
https://greektowntor[...]
2020-09-06
[6]
뉴스
Toronto gunman had ‘severe mental health challenges,’ according to family
https://globalnews.c[...]
2018-07-24
[7]
웹인용
All about Taste of the Danforth
https://tasteoftheda[...]
202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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